귀가 음란서생 세손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할아버지의 계획은 불필요하게 되었다. 차라리 죽을 수 있는 지금이 이윤에게는 더 행복한 일인것이다. 그 전에는 작기가 죽어도 자기 사람들을 살릴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자기 목숨으로 자기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지만 그 길을 현조는 꾸짖는다. 그런데 난 사실 현조의 말에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깟 심복들이라니... 심복들에게 그깟이라고 해 놓고 백성들을 어떻게 할거냐 하는건 앞뒤 말이 맞지 않는다. 차라리 너만은 지키겠다 하면서 죽는것도 마다하지 않은 심복들의 뜻이 뭔지 모르는것이냐 라는 게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제까지 현조가 귀에게 조복한 척을 하고 세손을 강하게 키웠지만 좀 더 빨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14살 어린 나이에도 혼자 이렇게 커왔다. 그것이 꼭 할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겠다라는 단순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 싶어했다. 복수에 눈이 먼 어린아이가 아니라 제대로 이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서 일어선 아이다. 그런 이윤을 더 크게 키울 건 할아버지의 증오보다 할아버지의 믿음이었을 거 같다. 이윤의 젊은 정의감을 노련하게 적당히 시기에 넓혀줬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러면 또 드라마가 아닐테니깐.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던 이윤에게 할아버지 진심을 충분한 위로고 힘이다. 왕과 세손을 넘어 할아버지와 손자는 이제서야 함께 손을 잡았다.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선에 있는 할아버지의 뜻이지만, 같은 뜻이라고 해도 할아버지 길을 따라가기 보다 이윤의 길을 세우는게 좋다고 느꼈던 대화였다. 이윤이 심복들을 위해, 자기 사람들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그 마음은 언제나 밑바탕에 존재하길 바란다. 너무나 사람답게 사람을 아끼는 이윤이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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