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윤이가 가장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은 이곳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몇 일간 갇혀 죽어간 곳, 그곳에서 아바마마에게 물 한방울도 줄 수 없었던 아들로써 자괴감에 빠진 상처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치유되지 못했는데 그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아버지가 죽은 우물 앞에 서 있다. 양선이가 자신은 음란서생이라고 말하면서 바라는 눈빛은 분명 원망이었다. 학영과 양선의 다른점은 이것이다. 학영이는 이윤의 사람이고, 양선이는 이윤의 백성이다. 학영이는 알고 있다. 결코 윤이가 비겁해서, 무서워서 자신이 음란서생이라고 밝히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는것을, 지금도 계속 어떻게 하면 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을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괜찮다 눈빛을 윤에게 보낼 수 있지만 양선이는 자신이 음란서생이라고 거짓을 고해도 묵묵히 있는 윤이는 어떤 면에서 비겁해 보인다. 왜 백성인 나에게 희망을 줘놓고 그 희망에 대답하지 않냐는 눈빛... 음란서생이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와 원망의 눈빛에 윤이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10년전에도 이런 상실감을 똑같이 느꼈다. 그걸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10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외로웠고 괴롭고 고단했지만 그래도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자기 발걸음이 틀리지 않았을거라는 희망이 있었던 시절이었을거다. 손에 닿지 않는 아버지를 꺼내줄 수 없었던 무력감에서 벗어나 10년간 차곡차곡 희망의 밧줄을 엮어 왔는데 그걸 백성들에게 내려주기도 전에 잘려진건 단 하루면 충분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아바마마를 살려달라고 매달려 울었다. 지금은 모든 걸 다 알아도 그저 눈물 흘리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차라리 아바마마를 잃고 마음껏 울기라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나아보일만큼 희망을 잃은 윤이는 인생의 가장 큰 절망이었던 이곳 말고 갈 곳이 없다.  



어떻게 하면 이윤이 견딜 수 있을까 고민되는 시간이 있을만큼 창민이가 보여주는 절망 앞에 이윤은 절절했다. 그 아픔이 느껴져서 더 안타까웠다. 내가 이윤이 끝까지 이윤답길 원하는 건 정말로 심창민의 이윤이 진짜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윤의 끝없는 고통의 시간이 헛되지 않고 꼭 이윤이 만든 해답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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