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선비의 인물들은 모두가 귀와 대적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성열은 자신의 가족과 연인을 귀에게 잃었고, 이윤은 나라와 아버지를 잃었다. 혜령은 귀에게 목숨이 붙잡혀 있는 상태고, 양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귀가 아버지를 죽였다. 각자 사연을 떠나서도 귀는 마땅이 없애야 하는 대상이다. 자기 기분내키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절대악이니깐. 그런데 절대악이고 절대힘을 가지고 있는 귀가, 귀 답지 않다는게 문제다. 그정도 힘을 갖고 있으면서 이 인간들이 아무리 날뛰어 봐야 자기 손바닥안에 있다는 오만함이 귀에게 존재해야 하는데 밤선비 안에 귀는 너무나 초조해 보인다. 120년간 도망만 다니는 일개 뱀파에 불과한 김성열에게 귀가 저렇게 까지 집착해야 할 만큼 어떤 라이벌적 의미가 있어보이지도 않고, 고작 인간에 불과한 음란서생이 뭘 하던 귀에게는 손끗 하나로 치워 버리면 되는 작은 나비의 날개짓 정도여야 할텐데 귀는 그 모든걸 너무 많이 신경쓰고 있다. 몇 백년간 이 나라의 숨은 권력자 답지 않게 말이다. 귀가 과하게 움직이니 인간세상이 요동을 치게 되는일이 반복되는데, 아이러니하게 이건 귀가 가장 바라는게 아니라는것이다. 가장 바라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끝판왕급인 귀가 시체를 산으로 만들만큼 움직일정도의 명분이 주어줘야 하는데 현재 밤선비에게는 그런게 없다. 매회마다 계속 흐르는 피는 어느덧 일반 시청자에게 거부감을 주었다. 


사실 정현세자비망록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 가는 건 음란서생이 아니다. 120년간 정현세자비망록을 찾으려고 유능한 책쾌를 고용해서 양선을 만나게 된 것도 성열이고, 양선의 양부가 정현세자비망록을 가지고 있다. 정현세자비망록에 이름이 있는 사람도 김성열이고 양선곁에 비망록이 있다는 걸 아는것도 성열 뿐이다. 그걸로 양선이 양부와 거래를 하는것도 성열이다. 김성열은 오로지 정현세자비망록에만 120년을 찾아다녔고, 음란서생은 그것이 있던 없던 자신의 길을 간다.이 드라마가 8부동안 보여준건 김성열의 정현세자비망록 찾기와 그 책을 엮인 양선과의 사랑이야기였다. 김성열은 자기 목적을 위해 정현세자비망록을 찾다보니 음란서생 만나게 된 것 뿐이다. 김성열은 음란서생이 있거나 없거나 정현세자비망록을 찾아 나서야 하는 정현세자의 신하고, 누구보다 귀를 죽이기 위해 그 책이 필요한 사람이다. 음란서생은 정현세자비망록이 없어도 시작한 애초에 귀와 대적하는 왕가의 이어진 이야기였다. 


절대힘을 가진 귀에게 성열 혼자로도 무리고, 인간인 세손에게도 무리다. 결국 합쳐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동안 사실 귀는 크게 앞에 나서면 안되었다. 절대힘을 가진 귀가 이렇게까지 온 힘을 다 쓰니 더욱더 인간과 귀의 힘차이는 나게 되고 귀는 초반부터 시체산을 만든다. 그래서 각자 고군분투 하는 세손과 그걸 쫒는 성열 만나지 못하는 동안 더욱더 절대적인 귀의 존재만을 느낄 뿐이다. 이것이 둘이 꼭 손을 잡아야 하는 명분을 만드는거였다면 이제는 정말로 제대로 손을 잡을 때다. 

 


일부에서 사랑 이야기인 이 드라마 러브라인을 제대로 그려라 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모두의 러브라인을 잘 그려라가 맞다. 메인의 러브라인은 충분히 보여지고 그려졌다고 생각이 된다. 그 러브라인에 개연성이라는걸 둘째치고 현재 이 둘만큼 사랑이 깊은 커플은 현재 이 드라마에서 아무도 없다. 가장 많은 분량이 나왔고,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가장 많은 대화들이 있었다. 문제는 극에서 겉도는 둘만의 러브라인이라는데 있다. 성열은 러브라인 말고도 귀와 대적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 양선에게는 오로지 사랑뿐이다. 사실 성열은 양선과 사랑에 열중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상황이다. 뱀파이고, 귀를 죽이기 위해 120년간 참아왔고 현재는 자기 목숨을 거네 마네 하는 상황이다. 이런 성열에게 양선이는 자신이 사람이었던 시절을 생각나게 하고, 뱀파라는 걸 잊게 해주는 사람이어야 하고, 힘들때 가서 쉬고 싶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양선이는 그저 자기 마음 안 받아 준다고 칭얼거리는 어린아이 같다. 결국 그 칭얼거림은 힘겨운 성열삶을 더 힘들게 한다. 또한 자기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밀어낼 수 밖에 없는 성열과 그런 성열의 정체를 모르고 상처 받은 양선, 그 사이 이윤이 있어야 하는데 이윤은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성열은 이윤에게 부러운게 있다. 바로 따뜻한 피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윤은 성열에게 부러운 것이 있다. 양선의 마음을 가진 남자라는것이다. 이렇게 서로 견제하면서 이윤도 자기가 사랑하는 양선이 자기 마음은 전혀 모른 체 자꾸만 다른 이에게만 완전히 올인하는걸 보고 가슴 아파 할 시간도 필요하다. 물론 성열도 이윤을 통해 자신이 뱀파라는 것에 대한 더 처절한 절망감, 그리고 그걸 뛰어 넘을정도로 그럼에도 양선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은 사랑을 키워갈 것이다. 사랑을 이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무르익어 가야 하는법인데 한쪽은 이미 무르 익은걸 넘어 이제 수확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쪽은 이제야 사랑의 씨앗을 겨우 뿌렸을 뿐이다.



심지어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러브라인도 있다. 바로 윤혜령이다. 아무것도 없다. 윤이야 양선이랑 이야기라도 하고 친분이라도 조금 쌓았다지만 혜령이는 윤이랑 뭐 한 게 없다. 벌써 거의 반은 지나왔는데도 말이다. 윤과 혜령도 할 이야기가 엄청 많다. 혜령은 윤의 정적인 최철중의 여식이고 귀의 사람이다. 심지어 윤이는 양선을 좋아하고 있다. 이 라인이 어떤 결말을 갖게 되더라고 납득이 갈만하려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매우 늦다. 또한 혜령 역시 윤-양선-성열 삼각관계 안에 들어와 사각관계를 축을 만들어줘야 함은 물론이다. 


누구의 팬이 아니라 시청자로써 이제까지 보는 밤선비는 각자 따로 노는 이야기 였다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였다. 성열, 양선, 이윤, 혜령, 귀 모두가 얽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자 플레이를 하게 되면서 하나의 이야기 안에 섞여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성열과 양선은 이미 깊은 애정의 관계로 들어 설 동안 삼각관계라는 이윤은 양선과 고작 몇 번 말을 한게 전부고 사랑의 라이벌인 성열의 존재도 의식하지 않는다. 성열도 마찬가지로 이윤을 연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양선과 이윤은 어릴 때 헤어진 벗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리 양선이 기억상실증에 걸렸어도 어느정도 힌트가 주어지면 혼란스러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예 진이라는 아이가 양선안에 존재하지 않으니 이 설정은 나중에 밝혀진다고 해도 약간은 생뚱 맞게 느껴질 수가 있다. 혜령은 도대체가 무엇을 정확하게 원하는지 알 길이 없이 8회가 지나왔다. 


이 드라마는 이윤과 혜령의 사랑에 인색했다. 8부 내내 거의 나오지 않았다가 정답이다. 누구보다 러브라인이 간절한 건 이 두 인물이다. 그리고 양선은 빨리 기억을 찾아야 한다. 모든 인물들이 목숨을 거는 순간에 아무것도 모르는 여주는 답답함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성열과 양선의 러브라인이 깊어지는데 찬성한다. 더 짙어지고 더 애틋해지길 바란다. 하지만 8부내내 따로국밥의 긴장감 없는 둘만의 올인 사랑이야기는 더이상 흥미롭지 못하다. 앞으로 정말 제대로 된 모두의 러브라인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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