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대한 분노로 꾹 참는 이윤의 두손은 결국 귀 앞에 꿇어야 하는 무릎 아래 놓여질 뿐이다. 살려 달라고 구걸하는 이윤의 목소리에서 정말로 비굴함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윤의 원통함이 감춰진 이 목소리 안에는 살아서 후일을 도모해야 하는 이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여기까지는 굴욕적이라고 해도 이윤이 견뎌야 하는 무게를 따지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가 귀 앞에서 자결을 한 피가 윤이의 얼굴로 전달되었을 때는 정말로 치욕적인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이윤이 이 걸 견뎌내고 나면 그러고 나서 정말 제대로 살아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귀가 가진 압도적인 힘이라는게 사람을 물어 죽이는게 아니라 이런 상황 속에서 더 처절하게 와 닿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바닥으로 끌어 내릴 수 있는 것이 귀였다. 그 앞에 윤은 귀가 속아 넘어갈 수 있을정도로 한심하게 무력했다. 이윤과 귀의 현재를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윤의 멘탈 걱정이 되었는데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벗이며 동료이고 충성스러운 신하인 학영이가 이 사태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자진 희생을 해서 들어왔다. 학영이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귀를 막아 설 수도, 그렇다고 귀에게 죽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윤에게 학영이는 그 몫은 자기가 감당하겠다는 듯이 귀를 도발한다. 그렇게 학영이가 귀에게 죽어가는 동안 이윤은 할 수 있는게 없다. 그저 이제는 귀를 속인다는 생각조차 못할정도로 무너져 내려 버린다. 어쩔 수 없이 죽은 학영이를 향해 몸이 향하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손이 떨린다. 하지만 그 마져도 귀는 허락하지 않았다. 


학영이는 살려주지... 학영이는 남겨주지... 지금도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왕가가 귀를 데려왔고 그거에 대한 책임도 왕가가 져야 하다지만 이윤에게 이건 너무 가혹하다. 혹시 귀를 처단하고 나서도 이윤은 함께 꿈꾸던 모두의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왕 이윤 말고 인간 이윤으로써 살 이유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정현세자비망록에 담긴 수호귀, 모계, 왕재의 의지 말고 그냥 일개 백성으로 노력했던 학영이가 살아 있는 세상이었으면 했다. 그 세상을 학영이가 보고 가지는 못했지만 결국 윤이가 학영에게 약속했던 충성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약속만큼은 지킨거 같다. 노학영 그는 이윤에게 마음 속 깊이 절대 충성할 수 있는 자신의 전하를 만났으니깐. 그런 전하를 만나고 그런 신하를 만났던 윤학영은 어쩌면 해피엔딩이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지만 역시 함께 살았다면 좋았을걸... 


이 장면 속에 이윤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실제하듯 안쓰럽고 안쓰러워 나는 이걸 연기하는 심창민을 잊어버렸다. 그저 어떤 세상이 와도 행복할 수 없을 거 같은 이윤이 정말로 그럼에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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