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궁안을 둘러보는 이윤의 마음은 복잡하다. 내려놓겠다 한 자리였지만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세손으로 그 자리에 이윤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세손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얼마나 훌륭한 왕재인지 학영은 누구보다 알고 있다. 그런 이윤이 혹시나 죽는다면 이 나라에 희망은 더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학영은 간청할 수 밖에 없다. 앞에 서는 일은 잠시 저에게 맡겨 달라고... 하지만 윤이는 허락할 수 없다. 윤이의 말처럼 그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귀와 결탁해 백성의 피로 권력을 지켜온 왕가의 사람만이 이 나라의 백성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단지 학영이 이윤이 왕재로써 훌륭해서 자청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놓게 될 수도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닐것이다. 자신이 과거 아버지 일로 비탄에 빠져 세상과 싸우려고 할 때, 자신의 상처를 만져주고 이끌어 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윤이와의 10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외롭고 지치고 무섭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던 10년의 벗이며, 동료이고, 군주였다. 그런 둘의 쌓아둔(언젠가 보여줄거라 믿는) 시간이 만들어 준 학영만의 충성심은 "나의" 세손저하 라는 말이 참 어울린다. 



윤이가 직접적으로 밑바닥 감춰뒀던 죽음이 두렵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벗이자, 동료며, 신하인 학영이 오래오래 윤이 곁에 그대로 있어주길 바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