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악이면 절대힘을 가진 귀에 맞서는 인간은 미력하다. 아무리 확고한 강단이 있어도 힘의 균형은 철저하게 기운다. 어떻게 대응할것인가, 결국 정답은 정현세자비망록 뿐인가로 귀결된다. 하지만 정현세자비망록은 가진 두명의 세자가 있었다. 한명은 정현세자, 또 한명은 사동세자다. 이 2명의 세자는 비책을 갖고 있어도 결국 귀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정현세자비망록은 가지고 있지 않고 진실 앞에 서 있는 세손 이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는 더 깜깜한 일이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모른 척 하기에는 이 나라는 죄없는 백성의 피로 세워져고, 또한 앞으로 그보다 더한 피로 유지될것이다. 이윤이 이 나라의 왕으로 선다는 건 백성의 피를 당연한 희생이라고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이걸 덮고 모른 척 하는것이 어쩌면 가장 적은 피를 흘리는것이다 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생명은 숫자로 경중을 따질 수 없다. 하나의 생명도 그 각자의 중요한 생명이다. 또한 귀는 언제든 폭주할 수 있는 존재고 결국 백성을 백성의 생명으로 어설픈 담보를 잡는것은 군주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 막지 못하면 결국은 더한 생명이 죽어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런 합리화에 빠져 할아버지 현조는 백성은 물론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자신의 비를 눈앞에서 죽어도 막지 못했다. 귀에게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자신만 눈을 감으면 겉으로 왕권이라는 권력을 계속 가질 수 있다는 욕심이 몇 백년 거짓나라를 만들어 왔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윤이 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귀의 살인을 눈감은 대신 그 힘으로 가장 누리고 산 사람도 왕조였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면에서 가장 안전했다. 귀의 말만 들으면 목숨은 보장되어 있었으니깐. 가장 높고 가장 안전한 용상의 자리에 앉을 사람인 이윤이 그 자리에서 내려와 제일 앞장서서 백성들의 방패막이 되지 않는다면 과거 뿌려진 피의 죄는 씻을 수 없다. 온전히 씻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 상처를 가장 많이 씻어 낼 사람은 이윤 뿐이다. 이윤 개인에게도 백성들을 위해 귀에게 대적하다 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가치없이 흘려보낼 수는 없는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죽었어도 아들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백성들에게 강력한 용기로 전해질 수 있다. 귀의 힘을 가장 잘 아는 윤이가 귀를 가장 두려워 하지 않으니깐.  


스스로 세손이 아니라 음란서생으로 살아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 다른 동료들은 원래 계획대로 해야 된다고 말한다. 귀에게는 그저 왕이고 세손이고 백성이고 다 죽이면 되는 존재들이고, 동료들에게는 어쩔수 없는 희생으로 보지만 윤에게 당장 100명의 백성들 목숨을 쉬이 여길 수 없다. 계획된 길로 가기에는 귀의 폭주는 예상을 뛰어 넘었고 여기서 다시 합리화 하고 뒤로 숨는다면 백성의 진정한 신뢰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명의 죽음 역시 정말 개죽음과 다를바가 없다. 상황에 따라서 외면하는 군주를 어떻게 믿겠는가?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거라는 믿음, 혹시 이 일을 하다 내가 죽어도 그 죽음이 의미없이 지나가지 않을거라는 신뢰가 존재해야 함을 이윤은 알고 있다. 

비책을 안다고 해도 그건 당장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닐거다.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세자들은 물론 귀의 스승이었던 수호귀도 결국은 죽었고 성열조차 120년 기다려만 왔다. 윤이의 이 확고한 결단의 움직임은 커다른 톱니바퀴로 세상의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이윤이 음란서생으로 진실을 외치자, 정현세자비망록은 회자되어 땅 속에서 세상에 나타나고, 성열도 드디어 도망다니며 숨 죽이는걸 그만두고 목숨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귀와 대적한다고 마음 먹는다. 귀에게는 힘이 있지만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다. 귀에게 없는것이 귀와 대적할 유일한 방법일것이다. 이윤은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민심들의 단단한 울타리만이 귀의 힘으로부터 세상을 보호하고 바꿀 수 있다고...비책은 그 가는길에 귀를 없앨 수 있는 더 빠른 길로 가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종착역은 아니다. 

윤이는 귀의 세상이 아닌 사람의 세상이 온다면 목숨도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다.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이윤에게 이 나라 세손의 자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돈, 명예, 권력, 심지어 묵숨까지도 이윤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사람들이 걱정으로 모두 말려도 윤이가 이제는 세손이 아니라 음란서생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백성들이 덜 다쳐야 하는 하기 때문이다. 음란서생의 일을 시작할 때도 백성이었고, 음란서생으로 살아간다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백성이었다. 나중에 정말 사람의 세상이 오고 이윤이 살아 있다면 그는 백성을 위한 진정한 왕이 될 것이다. 그 희망에 나라에 백성들이 아주 많이 살았으면 좋겠다. 윤이의 크고 넓은 마음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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